소설

그 남자의 흔한 이야기 Part 1-14(첫사랑 편)

느루 2022. 3. 6. 17:49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작가의 허락 없는 복사, 불법펌 등을 금지합니다.


 

가람이를 만나고 며칠이 지났다. 저번에 만난 이후로 가람이와는 간단한 연락을 하고 있다. 가람이는 재수학원을 등록했고 나는 이번주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갈 것 같다. 올라가기 전에 가람이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곧 서울 간다는 핑계로 밥이나 한 번 먹자고 얘기했더니 가람이가 알겠다고 연락이 왔다. 날짜는 이번주 수요일. 장소는 가람이 집 근처. 시간은 학원 수업이 끝나는 저녁시간. 

 

 

가람이를 만날 생각에 들떠있던 중 하늘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하늘) "야~ 너 왜 연락이 없어? 벌써 서울 갔어?"

 

(나) "아직, 이번주 금요일에 올라갈 것 같아. 뭐하고 지냈어?"

 

(하늘) "나도 이제 대학교 가야지. 근처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기로 했거든. 오늘 뭐해? 바쁘냐?"

 

(나) "오늘? 그냥 누워있는 날이다."

 

(하늘) "야, 그럼 저녁에 나와.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고~"

 

(나) "그래, 어디서 볼까?"

 

(하늘) "우리집 근처로 와. 너 시간 많잖아."

 

(나) "아...너무 먼데? 가면 뭐해주냐..?"

 

(하늘) "이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 "흠...그래, 6시까지 갈게."

 

(하늘) "어~ 6시에 보자."

 

 

하늘이를 보고 간다고 생각했던 걸 깜빡했다. 가람이에 정신이 팔려서 신경을 너무 못 썼다. 그래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얘기할 수 있는 친구인데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오후 6시. 하늘이 집 근처 상가로 갔다. 상가 앞에 도착하니 하늘이가 있었다. 하늘이는 편한 옷으로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보이자 하늘이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하늘) "야~~ 반갑다. 6시 딱 맞춰서 왔네~"

 

(나) "그럼. 내가 약속은 잘 지키잖아~"

 

(하늘) "우리 동네는 몇 번 안와봤을테니 내가 가자는 곳으로 가자~"

 

(나) "좋습니다~"

 

 

하늘이는 날씨가 춥다며 김치찌개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예전에 하늘이가 나한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그때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 "여기 김치찌개 하나 시키고 계란말이 같이 먹으면 맛있어. 배고플테니까 언능 먹자."

 

(나) "맛있겠다. 내가 김치찌개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냐?"

 

(하늘) "음...저번에 네가 말했는데. 김치찌개랑 계란말이 같이 먹는거 좋아한다고."

 

(나) "아~ 그랬었지. 그런 걸 다 기억하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건데."

 

(하늘) "훗, 내가 좀 섬세하지. 아무나한테 이러진 않지만 말이야."

 

(나) "어이구~ 고맙습니다. 섬세한 대상으로 여겨주셔서~"

 

(하늘) "진짜 고마운 거 맞냐, 고마우면 좀 잘해."

 

(나) "알겠어~~ 김치찌개 나왔다. 빨리 먹자."

 

 

하늘이는 계란말이가 나오자 케찹을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나한테 케찹을 줬다. 자기는 케찹 안 찍어 먹으니까 알아서 쓰라고. 나는 계란말이에 케찹을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하늘이는 이런 나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약간 감동받았다. 하늘이도 배가 고팠는지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나도 물론 배 터지게 먹었고. 우리 둘은 밥을 맛있게 먹고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하늘) "음....생각해놓은데가 있긴 한데..."

 

(나) "어딘데? 네 동네니까 네가 잘 알 거 아니야."

 

(하늘) "응, 근처에 조용한 선술집 있는데 거기로 갈래?"

 

(나) "선술집? 흠~ 그래, 뭐. 조용한 곳이면 괜찮을 것 같아."

 

(하늘)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나와 하늘이는 김치찌개집을 나와 선술집으로 향했다. 선술집으로 가면서 하늘이는 나에게 근황을 얘기해줬다. 병원쪽에서 일하고 싶어서 관련된 전문대학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일에는 학교 근처에 있다가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했다. 아예 타지로 가는 나로서는 조금 부러웠다. 타지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서울에서 매일매일을 지내는 게 약간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로의 일상을 얘기하다보니 선술집에 도착했다. 하늘이가 소주 2병이랑 오뎅탕을 시켰다.

 

 

(나) "야, 너 술도 못 먹는데 왠 소주를 시켜?"

 

(하늘) "에이~ 너 올라가는 기념으로 마시는 거지."

 

(나) "그래? 굳이 안 마셔도 되는데..."

 

(하늘) "이런 날도 있는 거야. 어차피 많이 못 마시니까 먹다가 힘들면 안 마시면 돼~"

 

(나) "어...취하면 말해. 적당히 마시고."

 

(하늘) "알았어~"

 

 

하늘이는 소주와 오뎅탕이 나오자 첫 잔을 원샷으로 마셨다. 기분이 좋은건지, 웃으면서 마시는 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마시다보니 어느 새 소주 2병이 거의 다 비어있었다. 나보다 술을 더 못하시는 하늘이는 이미 취해있었다. 

 

 

(하늘) "야~ 임다온~ 너 술 좀 마시네~~"

 

(나) "어? 너보단 잘 마시지~ 그래도 남자잖아. 근데 너 좀 취했다?"

 

(하늘) "에이~ 뭘 취해! 이정도는 다 마시는 거지. 그리고 오늘 좀 취하고 싶었어. 끅"

 

(나) "응? 왜? 무슨일 있어?"

 

(하늘) "무슨 일? 무슨 일 있지. 계속 있었지. 누구 때문에..."

 

(나) "어? 누구 때문이야. 우리 하늘이를 누가 이렇게 취하게 했어~"

 

(하늘) "진짜 몰라? 너, 눈치 진짜~ 없다아~"

 

(나) "뭐가? 내가 아는 사람이야?"

 

(하늘) "그럼. 네가 알지. 그럼 누가 아냐."

 

(나) "누군데,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하늘) "어? 도와줄꺼야? 진짜로?"

 

(나) "어, 그럼. 도와줘야지."

 

(하늘) ".....못 도와줄 거 같은데"

 

(나) "아니야, 뭘 못 도와줘. 얘기해봐. 하늘아."

 

(하늘) ".....야, 나 너 좋아해. 예전부터. 근데 요즘 그 마음이 더 커지려고 해. 그래서 힘들어."

 

(나) "어? 에이 장난 치지말고~"

 

(하늘) "장난치는 거 아닌데. 내가 말했지. 너 못 도와줄거라고..끅."

 

(나) "..."  나는 갑작스러운 하늘이의 고백에 당황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하늘) "그냥 그렇다고. 야~ 뭘 그렇게 침울해하냐. 너한테 좋아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 "응...그랬구나. 근데 하늘아 너 너무 취했어. 술은 그만 마셔야할 것 같아."

 

(하늘) "취했지. 그러니까 이런 말도 하지. 야, 근데 너는 나 여자로 안 보이나봐. 가람이는 여자로 보이고. 내가 얼마나 네 생각 많이하는데....."

 

(나) "나도 네 생각 많이 하지. 그리고 하늘이 너처럼 좋은 친구가 어딨다고 그래."

 

(하늘) "좋은 친구 맞지. 좋은 친구.. 그놈의 친구.. 맨날 친구래. 뭐, 좋아. 친구. 끅"

 

 

하늘이가 의자 위에서 잠시 비틀거린다.

 

 

(나) "하늘이 너무 취했다. 이제 들어가자."  

 

 

나는 하늘이를 부축하고 선술집에서 나왔다. 하늘이가 걷다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넘어질까봐 무서워 하늘이를 등에 업혔다. 

 

 

(하늘) "임다온 등 따뜻해. 맨날 해줘. 서울 가지말고~~"

 

(나) "야, 나 허리 나가. 자주 내려올게. 대학 가서 이렇게 술 먹지 말고."

 

(하늘) "히히히, 너나 대학교 가서 이상한 여자 만나고 다니지 마라. 내가 다 감시할거야."

 

(나) "많이 하세요. 그럴 일 없을 거 같으니까."

 

(하늘) "흐움~ 좋다. 남자가 업어주는 게 이런 거구나.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기분 좋네."

 

(나)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가지고.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거야..."

 

(하늘) "뭐? 넌 좀 곤란해야될 필요가 있어. 나처럼 좋은 여자가 어딨다고. 나중에 후회한다~"

 

(나) "참...그럴지도..."

 

(하늘) "...졸려..."

 

 

나는 하늘이를 업고 하늘이 집 근처까지 걸어갔다. 하늘이는 등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하늘이네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 하늘이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나) "야, 김하늘. 도착했어. 이제 일어나."

 

(하늘) "응? 아...벌써 왔어? 왜 이렇게 빨리 도착했어~"

 

(나) "많이 취했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엘레베이터 타고 들어가."

 

(하늘) "엘레베이터 같이 타고 가."

 

(나) "참나....하...그래, 같이 타자."

 

 

하늘이는 내 손을 잡고 엘레베이터 앞까지 나를 끌고 갔다. 엘레베이터가 도착하자 우리 둘은 엘레베이터를 같이 탔다. 하늘이가 제일 윗층을 눌렀다. 

 

 

(나) "응? 너희 집 여기 층이 아닐텐데...?"

 

(하늘) "조용히 해."

 

 

하늘이가 뒤에서 나를 안았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늘이가 아까 나에게 했던 말. 나를 좋아한다는 말.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난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늘) "임다온, 너 가람이 좋아하지? 좋아하는 거 다 알아. 근데 혹시 말이야. 걔랑 잘 안되면 나한테도 기회 한 번 주면 안 될까?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않아? 아까 도와준다고 했잖아."

 

(나) "...."

 

(하늘) "이렇게까지 하는 데 도와줄 수 있지?"

 

(나) "생각해볼게..."

 

(하늘) "...그래..."

 

 

하늘이가 17층을 눌렀다. 본인 집 층수인 것 같다. 하늘이는 17층까지 가는 내내 나를 계속 안고 있었다. 17층에 도착하자 하늘이는 나를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잘 가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늘이의 고백. 그리고 엘레베이터에서의 일. 여러가지 감정들이 섞여서 그런지 혼란스러웠다. 하늘이가 나를 남자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은 받았었는데...이런 상황일줄은 몰랐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하늘이와의 만남을 생각했다. 무엇을 같이 했고, 어떤 걸 먹었고, 누구를 만났었는지, 그리고 하늘이가 나에게 했던 말들도 기억해보았다. 하늘이가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지 고민했다.

 

 

가람이랑 잘 안 된다고 하늘이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되면 가람이한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하늘이에게 싫다고 하면 하늘이를 잃어버릴 것 같은데 그건 또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하는게 맞는 건지...잘 모르겠다.

 

 

고민이 깊어지는 하루였다. 술도 평소보다 많이 마셔서 그런지 너무 피곤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씻자마자 침대에 누워 바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