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남자의 흔한 이야기 Part 1-12(첫사랑 편)

느루 2022. 2. 9. 23:33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작가의 허락 없는 복사, 불법펌 등을 금지합니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가람이와 어디를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 잠에 들어서 그런지 새벽에 눈이 떠졌다. 어디서 볼 지는 정했지만 무엇을 할 지는 정한 게 없었다.  

 

 

가장 먼저 교도문고를 가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오답노트도 줘야하고 교도문고에서 공부해야할 수험서도 같이 고르다보면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람이와 친해지는 동시에 도움도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교도문고에서 가람이와 같이 수험서를 살펴본 후 저녁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번 만남 때, 하늘이와 같이 파스타를 먹었기 때문에 파스타와는 다른 음식을 찾아보았다. 백화점 근처에 스시와 일본식 돈까스를 잘하는 곳이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두 곳을 말해주고 가람이가 원하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둘 다 마음에 안 들면 낭패지만...그럴 거 같진 않았다. 내 주변에 돈까스는 몰라도 스시를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카페를 갈 지, 집으로 갈 지는 딱히 계획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가람이를 데려다주는 길이 생각보다 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 거 아닌 계획이겠지만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약간 피곤한 작업이었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하...가람이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지?' '괜히 하늘이한테 이런 얘기가 들어가면 하늘이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 그래도 보고싶었다. 나에게 가람이는 예쁘니까. 불필요한 걱정은 일단 접어두도록 하자.

 

 

점심을 먹으면서 가람이에게 간단한 문자를 했다. 

 

 

(나) "가람아, 잘 지냈어? 오늘 약속날인데...오후 5시에 교도문고가 있는 백화점에서 보는 거 괜찮아?"

 

답장이 오지 않는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내내 나는 핸드폰을 쳐다본다. '왜 안 오지?' '혹시 그냥 잠수..? 아, 이러면 안되는데...' '곧 답장하겠지 뭐.' '기다려보자.' 

 

나는 점심을 다 먹었는데도 답장이 오지 않아서 불안해졌다. 혹시나 가람이가 약속을 까먹고 다른 약속을 잡았다가 지금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아니면 그냥 내가 귀찮은건지....별 이상한 상상을 하던 와중에 답장이 왔다. 문자를 보내고 거의 1시간이 지나서였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가람) "잘 지냈어. 그러면 5시에 oo백화점 앞에서 보자~"

 

(나) "응, 알겠어. 그럼 그때 봐. 조심히 오고~"

 

(가람) "어~ 너도 조심히 와."

 

짧지만 긴장됐던 문자 시간이 끝나고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고민을 했다. 인터넷에 '남자 데이트룩' 이라고 검색하니 다양한 사진들이 나왔다. 그나마 내가 가진 옷들 중에서 비슷한 것들을 입고 있는 사진들을 골랐다. 니트에 면바지, 그리고 코트. 고등학생 때는 주로 교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옷들을 입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옷 색깔이 맞는 지 확인하기 위해 옷을 전부 입어보았다. 네이비 니트와 베이지 면바지, 그리고 검정색 코트. 전신거울을 통해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옷이 날개라고 확실히 깔끔해보이는 느낌은 있었다. 이렇게 입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오후 3시 30분이 되었다. 나는 준비했던 옷들을 입었다. 그리고나서 머리에 왁스를 조심조심 발랐다. 잘못 바르면 입었던 옷을 벗고 머리를 다시 감아야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머리 스타일이 한 번에 완성되었다. 머리를 하고 집을 나서니 오후 4시였다. 집을 나서도 버스정류장으로 거의 도착했을 때 집에 놓고 온 오답노트가 생각났다. '아이씨..정말...' 하는 생각과 동시에 빠르게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오답노트를 주섬주섬 챙겨왔다. 시간은 오후 4시 15분. 먼저 가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늦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버스를 타니 오후 4시 40분이었다. 늦을 거 같다고 가람이에게 미리 문자를 했다. 가람이는 괜찮다고 답장을 해주었다. 그래도 마음은 급했다. '처음 둘이서 보는 건데...늦으면 내 이미지가 안 좋아질 거 같은데...'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신호가 더 많이 걸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버스가 여태까지 탔던 다른 버스들에 비해 천천히 가는 느낌도 들었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도착까지 최소 10분이상 남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백화점 근처는 많이 막혔는데 오늘은 더 막히는 것 같았다.

 

 

백화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5시 18분.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백화점 앞을 봤는데 가람이가 없었다. 순간 당황했다. '기다리다가 짜증나서 그냥 갔나?' '문자로는 괜찮다고 했는데 뭐지?' '그냥 교도문고로 먼저 들어갔나?' '근데 말없이 그냥 들어갈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백화점 앞으로 뛰어갔다.

 

 

백화점 앞을 가보니 가람이는 백화점 정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밖이 추워서 창문을 통해 내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했던 것이다. 백화점 정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람이를 보니 여태까지 했던 걱정과 근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마치 엔돌핀이 확 도는 것처럼. 나는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리고 동시에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 "안녕, 늦어서 미안. 중간에 오답노트를 놓고 와서 집에 다시 갔다오느라...많이 기다렸어?"

 

(가람) "아니야. 괜찮아. 천천히 와도 되는데...왜 이렇게 뛰어왔어. 힘들겠네."

 

(나) "너무 늦어서 급한 마음에 뛰어왔네. 후~ 이제 좀 살 것 같다. 우리 교도문고 때문에 여기서 보기로 했는데 교도문고로 먼저 가볼까?"

 

(가람) "그래, 너 숨 좀 돌리고 가자. 뛰어서 그런지 숨을 너무 빨리 쉰다."

 

(나) "어, 고마워. 후....이제 교도문고로 가면 될 것 같아. 괜찮아졌어."

 

(가람) "그런 것 같네. 가자 그럼."

 

 

나와 가람이는 백화점에 있는 교도문고로 갔다. 올 때까지는 긴장되고 힘들었지만 교도문고로 가는 그 길은 상반되는 느낌이었다. 설레이면서 두근되는 느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