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남자의 흔한 이야기 Part 1-9(첫사랑 편)

느루 2022. 1. 21. 17:58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작가의 허락 없는 복사, 불법펌 등을 금지합니다.


가람이와 나는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는 별다방으로 알려진...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그 곳이었다. 가람이는 따뜻한 라떼를, 나는 카라멜마끼아또 아이스를 시켰다. 주문을 하고 우리는 2층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점심도 먹고 영화도 봐서 그런지 처음보는 사이 같은 어색함은 없었다. 그래도 하늘이가 없어서 그런지 약간의 침묵은 있었다. 가람이는 이 침묵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듯 창문 밖을 바라봤다. 나도 그런 가람이를 바라봤다.


가람이의 옆선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깨끗하고 하얀 피부가 돋보였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눈치 못 챘었는데 귀걸이도 하고 있었다. 튀지 않는, 그러나 피부톤과 잘 맞는 은색 귀걸이였다. 그런 가람이가 옆머리칼을 귀쪽으로 쓸어내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와중에 가람이가 말을 했다.


(가람) "무슨 생각해? 무슨 걱정 있어? 나는 재수할 생각하니까 갑갑해서 창문 좀 봤어."

(나) "아..별 생각 안했어. 그냥 네가 창문 보고 뭔가 생각하는 것 같길래...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지. 내 친구들 중에도 재수하는 친구들 있는데 다들 1년을 더 어떻게 공부해야하냐고 힘들어하더라."

(가람) "내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냥 해야지. 하는 수 밖에..."

(나) "원래 정해놓은 전공이 있었어?"

(가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했었어. 그래서 미대를 가려고 했는데 고3 때 너무 놀았나...원하는 대학교를 갈 성적이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집에서도 엉뚱한 대학교 가느니 재수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나도 그게 맞겠다싶어서 재수를 하게 된거야."

(나) "아하, 미술을 했었구나. 처음 알았네. 부럽다. 나는 그림 정말 못 그려. 맨날 미술수업 때 실기시험 보면 고통이었거든. 아마 내가 그린 그림이나 점토로 만든 거보면 엄청 웃을 거야. 내가 봐도 이건 성인이 만들어낸 수준이 아니거든."

(가람) "푸훗, 그래? 내신 점수 잘 받으려면 미술 실기도 잘 해야하지 않아? 주변 친구들 보면 미술 학원도 다니고 그래서 대부분 중간이상은 그리던데. 신기하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교를 갈 수 있으니까 마음이 후련하겠다.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나) "음...아무래도 후련하지. 대학생활이 기대되기도 하고. 너도 잘할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아직 너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지만...그냥 느낌이 잘할 것 같아."

(가람) "느낌이? 풋, 말이라도 고마워. 나 은근히 집중 잘 못하고 딴 짓 많이하는 편이라 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나) "혹시 수능 볼 때 좀 어려웠던 과목이 있어? 내가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도움이 되면 내가 공부했던 방법이라도 알려줄게!"

(가람) "오! 좋은데? 언어영역이 너무 어렵더라고. 어렸을 때 책을 안 읽어서 그런가....공부를 해도 점수가 맨날 거기서 거기야."

(나) "그렇구나. 나도 언어영역 때문에 고생 좀 했지. 다음에 내가 공부했던 거 그냥 줄게. 한번 봐봐. 말로 설명하기는 좀 길기도 하고 실제로 한 번 보는 게 나을 거야."

(가람) "그래, 그럼 다음에 기회되면 줘. 근데 하늘이는 무슨 일이 생겼나? 왜 갑자기 갔지..."

(나) "나도 그게 좀 걱정이야. 그래서 이따 저녁 때 한 번 연락해보려고. 저렇게 갑자기 간 적이 없어서.."

(가람)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늘이는 참 성격이 좋은 거 같아. 나랑 있을 때도 항상 밝고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줘서 옆에 있으면 기운이 나더라고. 너랑 있을 때도 그래?"

(나) "나랑 있을 때도 그렇지. 근데 나한테는 막말도 좀 하고 그래. 가끔은 막 때리기도 하고..후후.."

(가람) "하늘이는 네가 엄청 편한가보다. 하늘이가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편이긴 해도 막말은 잘 안하던데...하긴, 오늘 보니까 둘이 케미가 좋아보이긴 했어."

(나) "친구로서 티키타카는 잘 맞는 편이지. 하늘이가 리액션도 좋고 받아치는 드립력이 왠만한 남자친구들보다 좋아서 그런 듯?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이 덕분에 너도 알게 되고. 이래저래 고마운 친구야."

(가람) "응, 나도 뭔가 서울로 대학교 가는 친구를 알게 되서 기뻐. 하늘이한테 고맙게 생각해야겠네."


둘은 카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계속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다. 시간이 어느새 오후 7시가 되었고 둘은 카페를 나와 각자 집으로 가기로 했다.


(나) "버스 타고 가?"

(가람) "아~ 나는 집이 근처라서 그냥 걸어가면 될 것 같아. 너는?"

(나) "나는 버스 타고 갈 거 같아. 그러면 집 근처까지 데려다줄까?"

(가람) "아니, 괜찮아. 가는 길에 다른 친구 좀 봐야해서 그냥 혼자 갈게. 그럼 잘 가고~ 즐거웠어."

(나) "나도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가람이와 나는 그렇게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람이랑 생각지도 못한 데이트를 하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내내 가람이랑 했던 얘기를 곱씹어봤다. 가람이가 언어영역이 어렵다고 했는데 그걸 핑계로 내가 작성했던 오답노트를 주면서 한 번 더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점도 같이 가고...서점에 가서 같이 책도 고르고 이것저것 볼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에 미소가 생겼다.


집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하늘이에게 별 일 없냐는 문자를 보냈는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답장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10분 안에 보통 답장이 왔는데...이상했다. '정말 무슨 일 생겼나?' 하는 마음에 나는 하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전화 연결음)


(하늘) "여보세요." 하늘이가 약간 훌쩍대는 듯한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나) "하늘~ 무슨 일 있어? 문자 답장을 안 해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하늘) "별 일 없어. 그냥 집에 있었는데? 왜 전화했냐. 가람이랑은 잘 놀았냐."

(나) "어..뭐 그냥 카페 들어가서 얘기 좀 했지. 그러다 헤어졌어. 다행이다 그래도~ 별 일 없다고 하니."

(하늘) "새삼스럽게 뭔 걱정이야. 너 없어도 알아서 잘 지내거든."

(나) "갑자기 왜 이렇게 쌀쌀맞게 그러냐~ 그럼 별 일 없었다고 하니 이제 끊는다~"

(하늘) "뭐야. 그냥 바로 끊냐. 정도 없는 놈이네 이거는. 그래 그냥 끊어라."

(다온) "야, 왜 그래? 근데 저녁은 먹었음?"

(하늘) "안 먹었어. 배는 별로 안고파. 카페는 어디 갔냐 근데."

(나) "별다방. 그 영화관 옆에 있는 거. 이렇게 관심이 많은데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늘) "진심 같이 있으면 좋은 거 맞냐. 에휴 말해 뭐하냐. 야 그건 됐고, 너 나랑 놀이동산 가기로 한 거 안 잊었지?"

(나) "아~ 놀이동산. 기억나지. 언제 갈까?"

(하늘) "몰라, 니가 정해서 나한테 알려줘. 이제부터 네가 다 정해서 나 알려주고 밥 먹는 곳도 다 네가 정해서 알려줘. 내가 다 고를거야. 알겠지?"

(나) "뭐야. 갑자기 왠 이상한 갑질??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가자. 콜?"

(하늘) "콜. 그날 내가 놀이기구 엄청 태울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와라."

(나) "안 탈건데요~ 타야되는 놀이기구도 다 내가 정할 겁니다~"

(하늘) "풉, 그건 안되지. 놀이기구는 내가 정할거임. 암튼 그런 줄 알아라. 끊어."

(나) "그래~ 그럼 잘 쉬고. 밥 잘 먹고~ 바이~"


나는 전화를 끊었다. 하늘이 목소리가 살짝 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하늘이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데 말을 안 한걸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씻고 나서 컴퓨터를 켰다. 사이버월드에 로그인해서 가람이의 페이지를 들어갔다. 가람이는 사진을 올리기보다는 본인의 기분과 상태를 나타내는 일기장을 종종 쓰곤 했다. 아쉬움을 표현하거나 걱정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가람이가 재수하는 것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노트온 메신저에 알람이 떴다.


'가람님이 메신저에 로그인 했습니다.'


가람이가 메신저에 로그인을 했다는 알람이었다. 나는 잘 들어갔냐는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약속을 잡고 싶었다. 나는 주저없이 가람이에게 채팅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