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남자의 흔한 이야기 Part 1-7(첫사랑 편)

느루 2022. 1. 19. 14:46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작가의 허락 없는 복사, 불법펌 등을 금지합니다.

 

 

카페를 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 하늘이가 나에게 말을 건다.

 

 

(하늘) "저번에는 내가 데려다 줬으니까 이번에는 누가 나 데려다줘야하지 않겠어?"

 

(나) "그게 그렇게 되나? 김하늘 너 의외로 용의주도하구나. 그래, 그럼 오늘은 내가 네가 사는 곳 근처까지 갈게. 대신 네 집 근처 버스정류장까지만~"

 

(하늘) "치사하게 근처 버스정류장까지만은 또 뭐냐. 어차피 우리 집이랑 버스정류장이랑 거리가 가까워서 거기서 거기거든요~ 어떡하냐 임다온~~ 이미 말했으니 지켜야한다?"

 

(나) "엇..이런..알겠어. 어쩔 수 없지. 내가 또 의리는 있는 놈이니까~ 근데 좀 춥다."

 

(하늘) "이거 내가 하나 가지고 있던 건데 너 써." 하늘이가 핫팩을 건네준다.

 

(나) "오옷! 딱 필요했는데 다행이다. 내가 손이 좀 찬 편이라 겨울에 핫팩 같은거 있으면 남자치고는 잘 쓰는 편이거든~"

 

(하늘) "손 줘바바. 얼마나 차갑길래 그러냐" 하늘이가 손을 내민다.

 

(나) "생각보다 좀 차가울걸." 나는 두 손을 하늘이의 손에 포개 얹는다.

 

(하늘) "많이 차갑네.. 그냥 데려다주지말고 집에 갈래? 감기 걸리면 안되잖아."

 

(나) "(살짝 고민하면서 하늘이의 표정을 본다. 하늘이의 표정을 보니 막상 가버리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다.) 아~ 그래도 약속한 게 있는데 같이 가야지. 핫팩도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가자~"

 

(하늘) "그래? (하늘이는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나 싶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그럼 혹시 너무 춥거나 힘들면 나한테 말해. 알겠지?"

 

(나) "예~ 알겠습니다."

 

 

나와 하늘이는 조용히 길을 걷는다. 하늘이의 집으로 가는 길은 평범하다. 저녁이라 그런지 차는 별로 없었다. 간간히 보이는 빌딩 조명들, 가로등, 그리고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거리를 비추었다. 학교 다닐 때 자주 걸었던 길이라 그런지 편안했다. 그리고 하늘이와 걷는 것도 편했다. 말 없이 걸어도 불편하지 않는 이 느낌. 아무한테서나 받을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걷다보니 나는 하늘이를 이렇게 데려다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성을 집까지 데려다주는 건 연인들 사이에서 하는 행동인줄 알았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또 최근 하늘이가 나를 신경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뭘까? 얘가 왜 이럴까?', '무슨 이유라도 있나?', '혹시 엄청 힘든 일이 있는데 말을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면 설마..나를...?'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늘이가 말을 걸었다.

 

 

(하늘) "안 추워? 괜찮아?"

 

(나) "어, 걷다보니까 괜찮네. 너는 안 추워?"

 

(하늘) "나는 꽁꽁 싸메고 왔잖아. 봐봐. 너는 근데 목도리도 없네. 야 내꺼 써라." 하늘이가 내 목에 목도리를 감아준다.

 

(나) "오..뭔가 확 따뜻해졌어! 역시 김하늘이야."

 

(하늘) "너는 맨날 내가 챙겨주거나 잘해주면 '역시 김하늘이야.' 이러더라. 나도 '역시 임다온이야.' 라고 좀 말했으면 좋겠다. 엉?" 하늘이는 다온이가 따뜻해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 살짝 웃는다.

 

(나) "아이~ 지금 이 역경을 뚫고 데려다주고 있잖아. 그러면 한마디 해줄 만도 한데 말이지."

 

(하늘) "으이구. 귀여워서 봐준다. '역시 임다온이야.'"

 

(나) "내가 쪼금 귀엽지. 흐흐. 야 이거 목도리 너무 따뜻하다. 좋네 좋아."

 

(하늘) "오늘은 네가 그냥 쓰고 다음에 만날 때 돌려줘. 난 집에 목도리 많아."

 

(나) "음..그래도 돌려주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차피 돌아갈때는 버스타니까."

 

(하늘) "아니야. 너 추위 많이 타니까 나중에 돌려줘."

 

 

둘이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하늘이 집 근처로 왔다. 버스정류장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이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진다. 그리고 하늘이는 계속 생각을 하다가 다시 다온이에게 말을 건다.

 

 

(하늘) "야, 임다온. 너 근데 가람이랑 정말 아무것도 없어?"

 

(나) "가람이랑? 그냥 저번에 연락 한 번 한거 밖에 없는데...뭐가 그렇게 궁금하실까??"

 

(하늘) "아니, 평소에 여자한테 관심도 없던 놈이 갑자기 연락처를 물어보니까 이상하지. 안 그래?"

 

(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근데 뭐 있는 건 정말 아니야. 그럴 일이 생기면 너한테 먼저 말할게. 걱정마."

 

(하늘) "흠...그렇단 말이지. 알겠어. 그럼 너는 가람이 같은 여자가 네 이상형이야?"

 

(나) "어...아직 이상형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 근데 가람이 같은 외모와 느낌은 좋은 것 같아. 정확히 말하면...나쁘지 않은 거지. 음. 그게 맞지."

 

(하늘) "뭐야~ 그냥 좋다는 거네. 나 같이 키작고 말 많이 하는 여자는 별로라는 거고. 맞지?"

 

(나) "뭘 또 그렇게 말해. 그건 아니야. 저번에 말했잖아. 너도 너만의 매력이 있다고."

 

(하늘) "근데 그건 친구로서 매력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요?"

 

(나) "그건 맞지. 근데 우린 친구니까 최고의 칭찬이 아닌가 싶은데요. 김하늘씨."

 

(하늘) "그렇긴 하지...."

 

 

나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을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이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잠시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다보니 버스는 5분 전 도착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말을 했다.

 

 

(나) "어? 5분 남았다."

 

(하늘) "벌써 그렇게 됐네. 아직 시간 많잖아. 버스 하나만 더 기다렸다 가라. 안 그러면 연락 안한다. 그리고 내 목도리 있으니까 안 춥지?"

 

(나) "응?? 아 좀 추운데...알겠어. 하늘아. 근데 너 요즘 무슨 고민 있어?"

 

(하늘) "어? 무슨 고민? 왜??" 하늘이는 당황했다는 듯이 말한다.

 

(나) "아니, 평소에는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오늘 이러는 것도 있고..저번에 우리집 근처까지 나를 데려다 주는 것도 있고...뭔가 말하고 싶은 고민이 있는데 나한테 말을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늘) "아...듣고 보니 네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음. 별 고민은 아니고 그냥 너랑 있으면 편하니까. 같이 다니면 뭔가 에너지도 생기는 거 같고."

 

(나) "그래? 내가 에너지 드링크 같은 느낌인가? 풉"

 

(하늘) "어이구~ 자만하지마라. 그 정도는 아니니까. 버스 하나 더 기다릴거지?" 버스가 도착했다.

 

(나) "그래,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러지 뭐."

 

(하늘) "히히. 고마워. 다온아. 그거 기억나? 나 초등학교 때 너랑 같은 반이었잖아. 그 때 내가 식당에서 밥 먹고 있었는데 네가 나 괴롭히는 남자애한테 뭐라고 해준거."

 

(나) "음? 그랬나...기억이 안나네. 하도 예전 일이라."

 

(하늘) "나는 기억 엄청 잘 나거든. 그때 진짜 멋있었어. 나를 지켜주는 남자라는게 이런 거구나 싶었거든."

 

(나) "오호~ 내가 그랬었나? 신기하네. 그래도 그 때 좋은 일 했으니까 너라는 친구가 지금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겠지?"

 

(하늘) "맞아 맞아. 근데 초등학교 때는 네가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그런지 막상 친해지기가 어렵더라. 그리고 중 고등학교도 다른 곳에서 나오니까 더 만나기 힘들고...그러다가 수능 끝나고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만나니까 너무 반가웠어. 예전보다 키는 컸지만 생긴 것도 그대로인 것 같고. 후훗." 하늘이가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는다.

 

(나) "칭찬 맞지..? 나도 반가웠어. 초등학교 친구라서 그런지 금방 친해지고...또 뭔가 편하고. 그리고 너는 또 특별한게 내가 뭘 부탁하면 바로 도와주고. 여러모로 신기하네. 인연이라는 게."

 

(하늘) "맞아. 다시 만난 것도 그런데...또 이렇게 친해진 것도 신기하긴 해. 솔직히 초등학교 때 이후로 네가 좀 보고 싶었거든."

 

(나) "아...내가 널 지켜줘서?"

 

(하늘) "응. 그 때 기억이 뭔가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너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특별한 기억이야. 그리고 지금에서야 얘기하지만 넌 참 좋은 사람인 거 같아."

 

(나) "어떤 면에서?"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나는 속으로 당황한다.

 

(하늘) "어...뭔가 거짓말도 못하고...그렇다고 막말도 안하고...생각하는 것도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깊은 것 같고...그리고 웃을 때 눈웃음치는 것도 좀 귀엽고...뭐 이정도?"

 

(나) "나를 이렇게 좋게 얘기하다니...뭔가 수상합니다. 김하늘씨."

 

(하늘) "아..너무 진지했나? 야 그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긴 한데. 음. 그냥 나는 네가 편해서 좋아. 에지간한 남자애들보다 편하다고 할까? 그리고 가끔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티키타카도 잘 되고. 도와달라고 할 때 망설이 없이 도와주는 모습도 믿음직스럽다고나 할까..."

 

(하늘) "그렇구나. 그런 면들이 너에게는 좋게 느껴지는 부분인가보네. 어? 다음 버스가 또 5분 밖에 안 남았네."

 

(나) "그러게, 역시 너랑 얘기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니까~"

 

(하늘) "나랑 있으면 재밌지? 나도 너랑 있으면 시간 금방가서 재밌더라. 잡생각도 안나고."

 

(나) "그러게. 그럼 다음에 또 보면 되지~"

 

(하늘) "그럴까? 우리 그럼 다음에 놀이동산 한번 갈래?"

 

(나) "놀이동산? 어...나 무서운 거 잘 못 타는데 괜찮겠어?"

 

(하늘) "사내자식이 그런 것도 못 타면 어떡해. 군대도 가야하는데~ 이 누나만 믿고 따라와. 그럼 다 탈 수 있어."

 

(나) "어? 좀 고민되는데 갑자기???"

 

(하늘) "야, 안 시켜. 걱정 마. 그럼 나랑 같이 가는거다~"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하늘이는 버스에 탄 내가 자리에 제대로 앉았는지 정류장에서 나를 보고 있다. 목도리를 그대로 메고 있는 나는 하늘이가 밖에서 나를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딴 생각을 하다가 창문을 보니 하늘이가 서서 손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버스가 막 출발하고 있는 와중이라 나도 허겁지겁 손으로 인사를 한다.

 

 

그렇게 버스는 지나가고 하늘이는 다온이가 탄 버스를 계속 지켜본다. 하늘이는 좋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같이 느낀다. 다온이가 나를 이성으로는 보지 않는 것 같은 실망감. 하지만 나를 편하게, 그리고 좋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 이런 감정들이 섞인 채로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버스를 타고 멍하니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별 생각이 없다가 하늘이의 목도리를 걸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정류장에서 나눴던 얘기들을 곱씹어 본다. 하늘이가 진지한 분위기에서 했던 말들. 거짓말을 못해서, 막말을 하지 않아서, 생각이 깊어서, 웃을 때 귀여워서, 라는 이유로 나를 괜찮게 생각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또 생각하면 머릿 속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핸드폰이 울리자 버스에서 깜빡 잠 든 나는 일어났다. 다행히 한 정거장 남은 상황이었다. 핸드폰에는 하늘이의 문자가 와 있었다. '잘 도착했어? 오늘 데려다줘서 고마워. 다음에 놀이동산 꼭 가자. 나랑 안 가면 죽는다.' 라고. 나는 하늘이의 문자에 적당히 답장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꽤나 피곤했다. 방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