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남자의 흔한 이야기 Part 1-8(첫사랑 편)

느루 2022. 1. 19. 18:51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작가의 허락 없는 복사, 불법펌 등을 금지합니다.


하늘이를 데려다준 날 이후로 3일이 지났다.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다. 나는 지원한 대학교에 합격을 했다. 다행히 나와 짝궁이었던 계신이도 합격을 해서 조금 더 편안한 졸업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대다수의 친구들은 가족과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졸업식이 끝나고 친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부모님과는 저녁에 밥을 먹기로 하고)


아마 서울로 올라가면 고향 친구들을 볼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친구들 중 일부는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서 추억도 되살릴겸 우리는 학교 앞 분식집을 찾아갔다. 이 분식집은 지역에서 유명한 떡볶이집인데 떡볶이가 매콤함과 달콤함이 어울러진 독특한 맛을 냈다. 우리는 당분간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평소에 시키지 않았던 메뉴까지 전부 시켰다. 맛있게 먹는 도중 재수를 선택한 겨운이가 말했다.


(겨운) "아~ 재수 또 어떻게 하냐. 진짜 토나올 것 같아. 고3 생활을 1년 더 해야 한다니..."

(나) "힘내. 그래도 해놓은 게 있어서 유지만 해도 점수는 오를 걸?"

(계신) "맞아, 내가 듣기로도 재수 때 그냥 고3때처럼만 하면 성적이 잘 오르고 고3보다 조금은 놀아도 괜찮다고들 하더라. 물론 너무 막 나가면 안되지만.."

(겨운) "니들은 좋겠다. 나도 서울에 있는 곳 아니어도 좋으니까 그냥 여기 있는 국립대라도 갔으면 좋았을 걸..."

(나) "열심히 해서 서울로 오면 이 형님이 맛있는 거 사줄게. 계신이랑 후훗"

(겨운) "그래, 나중에 서울 올라가서도 보고.. 재수중이더라도 너희 방학 때 한번씩 이쪽으로 내려오면 시간 내서 보자. 그정도는 가능할 거 같으니까."

(계신) "그래, 그럴게. 그리고 잘 될거야.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겨운이의 푸념을 듣다보니 가람이가 생각났다. 가람이도 겨운이랑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가람이와의 약속이 어떻게 됐는지 하늘이한테 물어보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하늘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하늘, 뭐해? 졸업 축하해."

(하늘) "고마워~ 너도 졸업 축하해. 오늘 졸업식 끝나고 뭐해?"

(나) "나는 친구들이랑 밥 먹고 저녁에 가족끼리 있으려고. 너는?"

(하늘) "나는 아마 가족들이랑 계속 있을 거 같아.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ㅎ"

(나) "좋은 거 사주실 때 많이 먹어라. 맛있으면 나중에 나한테도 좀 알려주고~! 근데 혹시 가람이랑 저번에 보기로 한 거 날짜는 잡았어?"

(하늘) "아~ 그거. 대충 날짜 잡았는데 내가 깜빡했다. 미안. 아마 가람이는 이번주 토요일 점심때쯤 시간되는 거 같던데? 토요일 괜찮아?"

(나) "어, 좋아. 그럼 그 때 보자."

(하늘) "그래, 그럼 토요일 점심에 보는 걸로 하자. 뭐할지는 가람이랑 정해서 통보할게. 너한테는 결정권이 없는 걸로 ^^"

(나) "엄...난 그냥 맛있는 거만 먹으면 돼. 다른 건 상관없어. 그럼 토요일에 보자고!"

(하늘) "어~ 그때 봐~"


나는 문자를 하면서 실실 웃었다. 친구들이 좀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내 알바가 아니었다. 하늘이와 함께 보는 건 조금 부담스러워도 가람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토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이 왔다. 드디어 가람이를 만나는 날이다. 오늘 뭐할지는 하늘이가 어제 저녁에 문자를 남겨줬다. 점심에 유명한 맛집을 가서 파스타를 먹고 영화를 보기로 했단다. 이후에 시간이 되면 카페를 가던가 하기로 했다고. 둘이 정했다길래 독특한 거라도 할 줄 알았는데 별거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손에 집히는 대로가 아닌, 제대로 옷을 골라서 입었다. 낮에 가람이를 보게 되었으니 깔끔하게 보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입지 않았던 카라티와 친형이 여자 만날 때 입는 코트를 빌려 입었다. 머리에 왁스도 발랐다. 처음 왁스를 바를 때는 워낙 오랜만에 바르다보니 머리가 오히려 망가졌다. 그래서 머리를 한 번 더 감았다. 왁스를 다시 바른 두번째 시도에는 머리가 성공적으로 셋팅되었다. 나름의 셋팅?을 하고 전신거울 앞에 서니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깔끔했다.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가람이와 하늘이를 기다렸다.


하늘이가 가람이보다 먼저 도착했다. 하늘이는 저번만큼이나 예쁘게 차려 입고 왔다. 화장도 저번보다 잘 된 것 같다. 화장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제는 고3 수험생이 아니라 여대생의 느낌이 났다. 좀 더 성숙한 느낌.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여자 같은 느낌. 이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하늘이는 나를 보자마자 위부터 아래까지 싹 훑었다. 둔한 성격인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사실상 대놓고 훑은 거나 다름 없었다.


(하늘) "야~ 너 뭐야? 왜 이렇게 멋있게 입고 왔어~~~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아니면 가람이한테?"

(나) "그냥 오랜만에 제대로 입어봤어. 나도 이제 대학생이니까. 왜 나는 이러면 안되냐?"

(하늘) "생각보다 멋있어서 그런지 적응이 안되네... 키가 크니까 코트가 잘 어울린다. 오호?"

(나) "하하. 고마워. 너도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 오늘 밥 먹는 장소가 조금 샤방샤방한 그런 곳인가 보네."

(하늘) "어, 식당이 조금 그런 느낌이긴 해. 오랜만에 영화관도 가고~ 그리고 너랑은 처음 가는 영화관이기도 하고. 가람이랑도 제대로 나와서 놀 시간이 많이 없었거든."

(나) "그렇구나. 여러 모로 의미가 깊은 모임이네. 저기~ 가람이 맞나? 맞는 거 같은데?" 저 멀리서 가람이가 보인다.

(하늘) "맞네! 가람아 일로 와~" 하늘이가 손을 흔든다.

(가람) "늦어서 미안. 다들 오랜만이야. 반가워."

(하늘) "반가워 가람아~ 잘 지냈지?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나) "나도 반가워! 그럼 가람이도 왔으니 다 같이 밥 먹으러 갈까?"

(가람, 하늘) "좋아!"


우리 셋은 하늘이가 찾은 맛집으로 걸어갔다. 분위기메이커인 하늘이는 졸업식 얘기를 했다. 가람이는 졸업은 했는데 재수를 해야해서 그런지 졸업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가람이는 저번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별 말없이 둘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 가람이가 말하는 것들만 들어도 재밌었다. 그리고 조용히 가람이를 한번씩 쳐다봤다. 저번에 봤을 때만큼 예뻤다. 긴 생머리와 하얀 피부, 초롱초롱한 눈빛. 내가 머릿 속으로 기억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가람이에게 눈이 자꾸 갔지만 하늘이에게도, 가람이에게도 이런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하늘이가 미리 예약을 해서 그런지 창가 쪽 좋은 자리에 앉았을 수 있었다. 우리는 로제파스타, 알리오올리오, 라자냐를 하나씩 시켰다. 음식을 주문하고 가람이가 무엇이 부족한 지 빠르게 스캔을 했다. 먼저 비어있는 컵에 물을 채웠다. 그리고 포크, 숟가락를 나눠줬다. 가람이가 부족한 것들 위주로 내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하늘) "이야~ 임다온. 네가 이렇게 매너가 좋았어? 처음 보는 모습인데?"

(나) "부끄럽게 그런 말을...나 원래 이런거 잘하는 편이야. 너랑 있을 때는 네가 다 하니까 안한거지."

(하늘) "야~ 그럼 다음에는 네가 다 해라. 알겠지?"

(나) "알겠어, 다음에는 내가 다 할게." 나는 살짝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가람) "다온이는 착한가봐. 하늘이가 뭐라해도 다 받아주네. 푸훗." 가람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 "착한 건 아니고~ 하늘이랑 있으면 그렇게 되더라고. 나도 모르게~"

(가람) "그래? 하늘이, 나랑 있을 때는 엄청 여성여성하던데...신기하네. 다온이 너한테 유독 더 그러나보다."

(하늘) "내가 막 대하는 것 같아도 은근 또 다 챙겨주잖아. 안 그래 임다온?"

(나) "어...그런 건 좀 있긴 하지. 하하하..."

(가람) "둘이 엄청 친해보인다. 나도 다온이 같은 남사친 있으면 좋겠다."

(나) "나랑 막상 친해지면 그닥 부러워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오늘부터 더 친해지면 되지."

(가람) "그렇긴 한데...나는 재수도 해야하고...너는 서울로 간다고 하늘이한테 들었는데?"

(나) "김하늘이 내가 어디 가는 지도 다 말했나보네. 친해지는 건 요새 핸드폰도 있고~ 메신져도 있고. 그리고 서울에서 기차타면 금방 왔다갔다하니까 친해지는 거야 뭐...마음만 있으면 딱히 문제는 아닐 듯?"

(하늘) "둘이 엄청 친해지려고 준비하는 거야? 뭐야~~ 살짝 질투나는데..너희만 놀지 말라고~~"

(가람) "풉, 하늘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또 처음 보네. 나는 애교가 없어서 하늘이 같은 친구들 보면 참 부러워."

(나) "나도 처음 보는데..그리고 애교 없는 여자들 좋아하는 남자도 꽤 있어."

(가람) "그런가? 근데 주변 친구들 보면 거의 다 애교 있는 친구들이 남자친구를 잘 사귀더라고. 그리고 싸우거나 할 때 조금 덜 싸우는 거 같기도 하고...말투도 덜 공격적이어서 사이가 더 좋을지도..?"

(나) "난 뭐...경험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네. 근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리고 나한테는 뭔가 여자가 애교 부리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하늘) "이런 얘기는 처음 듣네. 임다온이 애교 없는 여자를 선호한다? 그렇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나는 알리오올리오를 먹었다. 집에서 엄마가 가끔씩 해줬었던 알리오올리오였는데 밖에서 사 먹는 건 처음이었다. 하늘이가 찾은 맛집이어서 그런지 역시 맛있었다. 하늘이는 로제파스타를, 가람이는 라자냐를 먹었다. 나는 알리오올리오를 가람이와 하늘이에게 한번씩 먹어보라고 살짝 퍼주었다. 하늘이도, 가람이도 서로 음식을 나눠주었다. 음식을 같이 나눠먹다보니 가람이랑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친해진 느낌이었다.


음식을 다 먹고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가람이가 정했다고 한다. 로맨틱코미디류의 영화였다. 나는 로맨틱코미디류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게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주로 SF나 스릴러 위주의 영화만 봤었다. 애초에 로맨틱코미디는 내가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기도 했고 가끔씩 봐도 딱히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달랐다. 가람이를 만나고나서 생기는 내 안의 감정들, 생각들이 로맨틱코미디에서 나오는 감정들과 대사들, 장면들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주인공들이 왜 저렇게 말하는지, 왜 웃는지, 왜 우는지, 왜 싸우는지, 왜 헤어지는지 모든 걸 알 수는 없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특정 장면들에서 마음이 동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람이를 슬쩍 보았다. 가람이는 영화를 초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초롱초롱한 눈이 스크린을 향하는 모습.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볼 뻔 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팝콘을 먹으면서 한번씩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하늘이는 영화관에서 이런 다온이의 모습을 다온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보고 있었다. 본인을 쳐다볼 때와는 다른 모습. 하늘이는 차라리 이런 모습을 안 보았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랬으면 버스정류장에서 다온이가 본인한테 말해준 매력들을 곱씹으면서 다온이에게 더 쉽고 편하게 다가갔을텐데...하늘이는 다온이가 가람이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걸 확신했다.


영화가 끝나고 셋은 영화관을 나왔다. 시간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들어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나는 카페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하고 가자고 했고 가람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하늘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조금 안 좋아보였다. 그리고는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먼저 들어갔다. 평소라면 아마 같이 있었을 하늘이였을텐데...안 좋은 일이 있나싶었다. 나는 저녁에라도 하늘이에게 안부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이가 먼저 가버린 바람에 나와 가람이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