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남자의 흔한 이야기 Part 1-3(첫사랑 편)

느루 2022. 1. 10. 17:24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작가의 허락 없는 복사, 불법펌 등을 금지합니다.

다음날 나는 어제와 같이 학교로 등교했다. 계신이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8시 58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우리는 앉아서 별 거 아닌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앉아 있던 형욱이가 본인이 어제 좀 곤란한 일을 겪었다고 하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형욱) "어떡하냐. 나 어제 엄마한테 걸렸음."

 

(나) "뭘 걸렸다는 거야? 뭐 야동이라도 보다가 걸렸어?"

 

(형욱)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거 같아. 어제 엄마가 하루 할머니댁 간다고 그래서 여자친구랑 집에서 놀았거든. 근데 뭐 어쩌다보니까 내 방 침대에서 여자친구랑 그거를 했어. 하는 건 뭐.. 예전부터 했으니까 상관 없었는데..갑자기 엄마가 할머니댁을 당일치기로 갔다오는 바람에....."

 

(계신) "뭐? 아니 이거 웃긴놈이네. 역시. 아니아니 그냥 넌 미친놈이야. 예전부터 하는 얘기가 죄다 정상인게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 계신은 매우 궁금하듯이 물어본다.

 

(형욱) "그래서 뭐...여자친구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지. 나는 엄마한테 거의 걸레짝처럼 쳐맞았고...죄송하다고 계속 빌었어. 여자친구한테도 미안하다고 계속 얘기하고...하 수능도 끝났는데 운이 왜 이렇게 없냐?"

 

(나) "운 탓 하는 게 맞나 모르겠네...장소 좀 가려가면서 해야지.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대체 알 수가 없다. 이 동물 같은 놈아."

 

(형욱) "에휴, 너희가 뭘 알겠냐. 여자 사귀고 해봐라. 우리 같이 신체 건강한 청년들은 이 끓어오르는 성욕을 버텨낼 수가 없어요~ 버텨낼 수가~ 수능 끝났으니까 여자애들도 만나보고 좀 해라. 그게 뭐 범죄도 아니고. 그리고 꼭 그걸 하고 말고가 중요한게 아니야. 그냥 일단 만나봐. 다른 세상이니까. 이 어 린 놈 들 아. 흐하하"

 

(계신) "형욱이 깝치는 거 보니까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네. 그리고 난 별로. 대학교 합격하고 서울 올라가면 빨리 공부해서 사법고시 합격할거야. 여자는 언젠간 만나겠지 뭐. 부모님이 내가 잘 되면 여자는 따라온다고 했거든."

 

(나) "흠, 형욱이 말도 일리는 있어. 맨날 놀기만 했어도 그쪽 방면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경험이 많을테니까. 그리고 여자라는 존재와 좋은 감정으로 만나면 뭔가 다른 세상일 거 같긴 해. 노래나 소설, 드라마 같은 데 보면 사랑하는 사람한테 눈 돌아가서 이상한 짓들 많이 하잖아. 머리로는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데...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긴 하지. 모르겠다. 에잇 나는 그냥 수능 끝났으니까 무지성으로 놀란다~~ 여자든 남자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공부하느라 너무 억압되어 있었어."

 

(형욱) "필요하면 형님한테 말하라고~ 여자 소개시켜줄텡게~ 여자는 많고 우리는 시간도 많으니까~"

 

나는 형욱이의 말 중에서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 머릿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어제 봤던 가람이가 생각났다. 평소에는 이런 적이 없었던 나였는데..계속 생각나는 게 좀 이상했다. 이게 '다른 세상'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냥 호기심? 인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에게 느끼는 호감? 호기심?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가람이를 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충분히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가람이랑은 몇 마디 말도 제대로 안 해봤다.

 

성격이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랑 친한지, 어떤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지 등등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단둘이 보면 어떨까?' '아니 그냥 일반적인 커플들이 하는 맛집 가서 밥먹기, 영화보기, 서점에서 책 보기,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 같은 것들을 하면 어떨까?' 하는 자질구레한 생각들로 머릿 속이 가득 찼다.   

 

이런 생각을 하던 도중 연락처라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하늘이의 친구니까...가람이는 나의 친구의 친구.' 뭐 그정도면 연락처를 받는 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늘이한테 문자를 했다.

 

(나) "하늘아 뭐해? 어제 잘 들어갔어?"

 

(하늘) "어, 왠일이냐? 네가 안부 문자를 나한테 날리고? 내가 어제 좀 이쁘게 하고 가서 그런가? 별일이네."

 

(나) "아니, 그냥 어제 네가 갑자기 우리 집 쪽으로 오길래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문자 보냈어."

 

(하늘) "뭐야? 날 걱정한거야? 은근 스윗하네~. 별일 없어. 그냥 간 거니까 신경쓰지마. 밥은 먹었냐?"

 

(나) "어,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한솥 시켜먹었지 ㅎㅎ 도련님으로다가..아 근데 혹시 너 가람이 연락처 알지? 혹시 나한테도 알려줄 수 있어? 다음에도 왠지 볼 거 같은데 먼저 연락처라도 받아놓는게 좋을 거 같아서."

 

(하늘) "가람이 연락처 물어보려고 연락한 거였군. 그럼 그렇지. 가람이한테 물어보고 알려줄게."

 

(나) "어, 고마워. 하늘!!"

 

(20분뒤) 하늘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하늘) "010-xxxx-xxxx, 가람이 전화번호야.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아직 너랑 겨운이랑은 거의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너는 겨운이랑 달라서 귀찮은 일은 안 만들겠지..뭐."

 

(나) "당연하지. 나 임다운, 맹세합니다. 김하늘 누님에게 전혀 어떠한 영향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하늘) "그래, 야 다음에 상현이랑 별이도 같이 날 잡아서 보자. 너 대학 붙으면 서울 가잖아.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간다고~"

 

(나) "역시.. 내 생각해주는 건 김하늘 너 밖에 없다. 상현이랑 별이한테 물어보고 날짜 알려줘~ 겨운이도 같이~~가람이도 같이 볼 수 있으면 더 좋고."

 

(하늘) "알았어. 날짜 대충 잡히면 연락할게.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

 

하늘이는 나에게 뭔가 누나와 엄마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친구다. 필요한 일이 있어서 연락하면 아무 말 없이 도와준다. 그에 따른 대가도 바라지도 않고. 참 좋은 친구다. 

 

이제 가람이 연락처를 받았으니.. 연락을 해야 한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그런지 어색하다. '안녕?', '잘 들어갔어?', '어제 재밌었어.' 등등 상투적이면서 안부를 묻는 말들이 먼저 생각났다. 바로 문자를 보냈다가는 실수를 할 것 같아서 조금 시간을 두고 연락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하늘이가 가람이한테 연락처를 줘도 되냐고 물어본 상황이라 가람이도 내가 연락할 것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 바로 연락하는 게 좋을까?' '아니야. 그래도 좀 더 생각해보자. 어차피 나중에 또 볼 수도 있는 사이니까 굳이 먼저 따로 연락할 필요가 있을까?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같이 한 번 더 보면서 친해지면 될 것도 같은데...' 혼자서 수능 볼때 만큼이나 신중하게 고민을 하는 나였다. 그러다가 좋은 묘수가 떠올랐다.

 

바로 사이버월드! 우리 또래 대다수 친구들이 사이버월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가람이의 사이버월드 홈피로 들어가면 이것저것 사전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녀에게 관심 있는 남자가 있는 지도 확인할 수 있고. 하하. 그리고 사이버월드 내 게시글을 공개로 해놨으면..누군가는 와서 봐도 상관없는 거니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학교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빨리 집으로 가서 컴퓨터로 가람이의 사이버월드를 찾아 들어가보고 싶었다. 가람이의 사이버월드는 분명히 하늘이와 일촌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하늘이 일촌을 타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천재가 된 기분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겨운이랑 같이 하교를 했다. 겨운이는 어제 놀았던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겨운이가 가람이한테 별 관심이 없어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덥잖은 얘기를 하고 겨운이는 중간에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마치 엄청 기대하고 있는 택배가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켰고 하늘이의 일촌에서 가람이를 찾기 시작했다.